신혼여행기#7 그라파는 맛이 없었다.
숙소에 와서 씻고 맥주한잔을 하니 비로소 힘이 났다. 그리고 나니 배가 고팠다. 우리는 저녁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다. 저녁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그래도 이테리에 왔는데 근사한 야외 테이블에서 먹는게 좋을까? 아님 저렴하게 민박집에서 차려주는 저녁을 먹는게 좋을까? 그것도 아님 이테리답게 피잣집에서 피자를 먹는게 좋을까? 이때 생강양이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제안이라는 좋은 말로 했지만 사실 결정을 했다는게 맞다. 음....유부남은 와이프의 눈치를 본다.
생강양의 제안은 슈퍼에서 먹을것을 사다가 방에서 만들어 먹자는 것이다. 한국에선 비싸서 감히 손도 못대는 치즈와 잘라미가 유럽에선 무척 싸다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와인을 한잔 곁들이면 무척이나 즐거운 저녁이 될꺼라고 했다. 이탈리아 와인 말이다. 나는 생강양과 협상에들어갔다. 사실 생강양을 졸랐다. 나의 주장은 와인은 다음에도 먹을수 있으니 이테리의 소주라고 하는 그라파를 사먹자는 것이었다. 다행이 생강양은 허가를 해주었고 테르미니 역 아래 마트에서 과일 조금과 렌지에 돌려먹는 라자냐(이것도 내가 고른것이다.)와 바게트 하나 그리고 바게트에 넣어먹을 치즈하나 마지막으로 다양한 종류의 잘라미가 들어있는 팩을 하나샀다. 그리고 문제의 그라파를 한병샀다. 그라파는 아주 싼거부터 적당히 비싼거 까지 있었는데 너무 질이 떨어지면 혹시 좋지 않을까봐 가장 싼것도 아닌 그 다음 가격도 아닌 밑에서 3번째 정도의 가격의 술을 샀다. 그리고 콜라 한병을 샀다.
두손에 장바구니를 가득 들고 숙소로 오는길을 즐거웠다. 시차 적응을 못해 아주 일찍 일어났는데다가 열심히 걸었더니 무척이나 피곤하였고 우리의 계획은 밥먹고 바로 자는 거였다. 방안의 테이블을 이용해서 간단한 상을 차렸다. 지중해의 기운을 가득 품은 과일은 훌륭했고 잘라미와 치즈로 만든 샌드위치는 더할나위가 없었다. 문제는 그라파였다. 생강양은 그라파가 그정도로 독한술인줄 몰랐다고 했다. 독주를 즐기지 않는 생강양은 콜라에 타서 희석시키길 원했고 콜라에 탄 그라파를 마셨다. 독주를 즐기는 나는 혼자서 홀짝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산 그라파만의 문제인지 아님 그라파 자체의 문제인지 술에서 이상한 향이 났다. 막 이상한건 아닌데 목넘길때마다 올라오는 향은 술을 먹기에 불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콜라에 타니 그게 더 심해 졌다. 콜라의 향과 그라파의 향이 어울어지지 못한체 둘다 올라왔다. 그래서 더욱 먹기 힘든 술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피곤했다. 돈한술을 몇잔씩이나 마실 체력이 남아있지 못했다. 우리는 밥을 먹고는 쓰러지듯이 잠들어버렸다. 우리의 계획은 밥먹고 술한잔하고 좀 쉬다가 콜로세움을 가는 거였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늦게까지 잠들지 않아서 시차적응을 하자는 거였는데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들어 버렸다. 신혼여행의 첫날밤에 술먹고 뻗어버리다니 코미디 영화에나 나올 상황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