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기-인천공항 진짜. 이래도 되냐?
공항이 보였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3시 쯤이었다. 우리는 느긋하게 단기 주차장으로 향했다. 단기 주차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카드중 하나가 발래파킹을 지원주고 있고 그 서비스를 이용하면 단기주차장에서 차를 넘겨서 장기주차장에 주차를 해주는 서비스를 받을수 있었다. 장기주차장의 금액으로 단기주차장의 효과를 볼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갈땐 늘 발렛 서비스를 이용했다. 단기 주차장으로 가기위해서 공항 2층 출국장으로 향하는데 눈발이 날렸다. 제법 함박눈이었다. 혹시나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건 아닌까 걱정이 될정도로 무거운 함박눈이었다. 눈보라를 뚫고 주차장입구로 향했다. 거기에는 차들이 줄을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천공항을 여러번 이용했지만, 주차장에 차들이 그렇게 줄서있는건 처음봤다. 토요일 아침 비행기여서인지 아님 정말 여행가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난건지 정말많은 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 기다려 겨우 차를 맏길수 있었다. 주차를 기다리는 동안 눈은 완전 함박눈으로 변했다. 그 사이에 도로와 공항과 차들은 하얀눈으로 덮혔다. 우리는 잰걸음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생강양은 그 짧은 사이를 엄청나게 추워했다. 따뜻한 나라로 가는 여행이라 옷이 얇아서 였다고 생각한다. 담이 걸릴정도로 추웠다고 했다. 찻길 하나를 건너 공항건물안은 무척 따뜻했다. 생강양은 그제야 몸을 녹이는듯 했다.
공항에 들어가 일단은 체크인을할 카운터를 확인했다. 그때나 4시 채 못된 시간이었다. 채크인 카운터는 4시 10분에 문을 연다고 했다. 아기랑 가는 여행이라 저가항공이라도 좌석까지 구매해둔지라 빨리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느긋하게 체크인 카운터를 확인하고 와이파이 기계를 받으러 갔다. 와이파이기계는 특이하게 출구쪽에 있어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와야했다. 평소같으면 짜증냈겠지만 이번에는 느긋했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4시반쯤 도착을 한다고 했다. 우리는 항공사 카운터 앞의 밴치에 자리를 잡았다.
주위를 둘어보는데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확실히 가족들이 많았다. 오키나와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준비중인 대가족들도 보였다. 바로 옆에 무리도 가족이었는데 호호 할아버지 할머니 부터 이제 막 걸을마를 땐 손주까지 10여명의 모였다. 가족들이 공항에서 모이는듯 연신 새로운 사람들이 오고 서로 인사를 나눴다. 보기 좋아보였다. 할머니가 조금만 더 건강하고 조금만 더 젊으셨다면 함께 갈 수 있지 않았을까? 100세를 바라보는 연세에 비행기는 무리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리를 쉬며 잠시 앉아있자니 여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2층에 도착 했는데 조카짐때문에 잠시 나와 달라고 했다. 매제는 동생과 조카만 내려주고 주차를 하고 온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 여동생의 짐을 들고 왔다. 그때가 5시가 좀 되기 전이었다. 이때부터 마음을 졸이기 시작한거 같다. 매제는 장기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버스를 타고 온다고 했는데 새벽이라 그런지 버스 간격이 무척 넓다고 했다. 시간은 가고 마음을 가파왔다. 일단 우리는 먼저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체크인 하면서 혹시나 매제표도 받을수 있을지 물어봤지만 안된다는 대답만 들었다. 본인이 직접 와야지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체크인 카운터 옆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나마 조카와 함께 있어서 받을수 있었던 패스트 트랙표만 믿을수 있었다. 어느덧 체크인카운터도 하나만 남기도 다른 비행기를 체크인하기 시작했다. 몸도 달고 마음도 달아 있을때 저쪽에서 매제가 달려왔다. 우리는 양해를 구하고 바로 체크인을 하고 출국 심사를 받기위해 달려갔다.
지금까지 인천공항에 대한 이미지는 좋았다. 정말 그걸 한방에 날려버릴 만한 일이었다. 글을 적는 지금도 화가 난다.
우리는 출국심사를 받기위해 달려갔다. 5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출국 심사를 받기전 소지품 검사를 받는 부분부터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우리랑 같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패스트 트랙도 소용이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직원에게 이야기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대 하늘색 점퍼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다른쪽 입구가 빠르다며 그쪽으로 가라고 안내를 했다. 우리는 그말을 듣고 달렸다. 알다싶이 인천공항은 엄청나게 크다 입구와 입구사이는 굉장히 멀다. 우리는 아기를 안고 유모차를 밀며 뛰었다. 그런데 도착한 입구는 아직 오픈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가 5시 45분이었다. 정확히 시간도 기억이 났다. 검사대 입구에서 정복을 입은 직원이 6시에 연다고 했다. 당황한 우리는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만이 아니었다. 저쪽에서 넘오온 20여명이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정복은 서로 연락이 안된상태였다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게 말이 되냐며 더욱 거세게 항의를 했다. 6시반 비행기인데 6시에 문을 여는 심사대를 안내하는게 말이되냐고 말이다. 일하는 사람들끼리 연락이 안되는게 말이 되나고 말이다. 그때 군청색 제복을 입은 사람이 정말정말 화가 나는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들이랑 우리는 회사가 달라요"
가만히 있으려고 했다. 생강양이 항의할때도 한마디도 거들지 않았다. 그냥 줄을 앞에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 시간을 재고 있었다. 그런데 이성이 날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화가났다. 제복한테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을 그럼 인천공항이 아닌 어디서 일하는지 물었다. 아님 자원 봉사를 하는건지 뭐하는 건지 물었다. 내가 왜 너희들이 회사가 다른걸 이해 해야하는지 물었다. 그이야기를 나에게 왜하는지 물었다. 지금 생각해도 피가 거꾸로 솓는다. 제복은 당황한듯 보였다. 자기가 그말을 하면 우리가 이해할줄 알았던거 같다. 내가 더 화를 내고 항의를 하자. 당황해 했다. 그게아니라로 시작되는 변명들을 쏟아냈다. 항의를 하고 있다보니 심사대를 여는 시간이 되었다. 마음 급한 우리는 처음으로 들어갔다. 그 제복 이름이라도 적어두는 건대 그럴 정신이 없었다. 다행이 비행기 게이트는 심사대 바로 옆이었다. 생강양과 여동생이 먼저 들어가서 면세품인도장으로 뛰어가기로 했다. 나와 매제는 아기와 짐을 챙기기로 했다. 그런대 일이 또 벌여졌다. 직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이 엑스레이 검사를 받기위해 앞서 갔다. 그러며 바구니를 내리다 아기를 툭쳤다. 그러곤 사과도 없이 가려하는거 아닌가? 도대체 인천공항은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애 아버지가 화가 났다. 그냥 가려 하냐고 물었다. 직원은 그제서야 어버버버 사과를 하는둥 마는둥 했다. 아기는 얼떨떨 한지 분위기를 살피며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지쳤다. 정말 인천공항에 대한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생강양과 여동생이 먼저 달려가고 겨우 늦게 나온 나와 매제는 비행기 게이트로 향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둥바둥 나왔는데 비행기는 연착이라고 했다. 허무 했다. 6시 30분 출발인 비행기는 6시 30분에 탑승을 시작한다고 했다. 우리는 생강양에게 전화를 했다. 생강양은 그제야 뛰던 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리고 면세품 인도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