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오키나와 -고양이와 만좌모
밥을 먹고 나서야 여유 있게 건물을 나왔다. 건물 앞에서는 길고양이로 보이는 작은 아기 고양이들이 교복 입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 두 명에게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평소에 고양이와 친하게 지내는 주민인가 생각하며 구경하고 있었다. 그 장면은 일본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렇게 보고 있자니 아이들은 잠시 고양이와 놀아주다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제 고양이와 나 사이에 가로막는 건 없었다. 새끼 고양이는 아이들의 손길이 아쉬운지 아니면 햇볕을 즐기는지 그 자리에 앉아 그루밍하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조금씩 다가갔다. 새끼 고양이는 나를 힐끔 쳐다봤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루밍을 계속하고 있었다. 드디어 손이 닿을듯한 거리가 된 나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새끼 고양이는 움찔거리더니 이내 나의 손길에 머리를 맡겼다. 기분 좋아 보였다.
한국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심성 많은 고양이가 처음 보는 이에게 손길을 허락하다니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이곳의 고양이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해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닐까? 뭐라 말할 수 없는 서글픔이 들었다. 비단 이곳만의 일이 아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다음 행선지인 만자 모의 주차장에도 고양이들이 있었다. 그곳의 아이들도 이곳의 아이들과 똑같았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주차장에 벌러덩 누워 있다. 사람이 다가오면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곤 쓰다듬어도 가만히 손길을 즐기다 귀찮다 싶으면 어슬렁어슬렁 사라졌다. 뭐랄까 일본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많지만, 일본이 선진국이라 느끼는 순간들이 이런 순간들이다. 우리나라에선 길고양이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좋다기보다는 걱정이 먼저 되었다. 한국에선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곳 위험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신나고 씁쓸하고 슬픈 일이었다.
앞서 말했듯 다음으로 간 곳이 만자 모이었다. 처음 계획은 만자 모은 다음날 예정이었지만 시간도 지체되었고 생강양이 원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만자 모은 우리 숙소보다 북쪽에 있었다. 숙소 남쪽으로 내려온 우리는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생각보다 구불구불한 지나고 나니 명성과는 다르게 작은 주차장이 나왔다. 꼭 시골 주차장처럼 생겼는데 화장실 건물이 하나 딸랑 있고 일본답게 자판기가 몇 개 늘어서 있었다. 그 뒤로 낡은 천막에 자판들이 깔려 있어 조잡한 기념품 따위를 팔고 있었다. 주차장은 차로 거의 가득 차 있었고 심지어 단체관광객들까지 와서 대절 버스도 있었다. 우리는 비로소 관광지에 온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오키나와라는 일본 최대의 관광지를 다니면서도 관광지라는 인식이 없었다. 시기도 이기이고 우리가 사람이 막 붐비는 곳은 선호하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자 모은 달랐다. 티비에도 자주 소개되는 대표적인 관광지였다. 우리는 한 무리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관광했다. 그들은 정말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우르르 움직이고는 가장 유명한 바위앞에서 단체사진을 한 장 찍고 다시 헤쳐모여 몇그룹으로 만들더니 사진 몇장을 더 찍고 처음처럼 우르르 사라졌다. 신기했다. 생강양과 나는 단체 패키지 관광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른다.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가 그곳에 있었다.
만자모은 별것 없었다. 주차장에서 나오면 조금 큰 학교운동장 둘레만 한 산책로가 나오고 그걸 한 바퀴 도는 것이 끝이다. 그 산책로 한쪽에서 바라보면 유명한 코끼리 바위가 나왔다. ㄱ자 모양으로 깎아지는 절벽 가운데 동그란 구멍이나 어떻게 보면 코끼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한 커트는 정말 멋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한 바퀴를 돌며 본 장면은 그저 그런 오키나와를 다니다 보면 볼 수 있는 바다와 절벽 그 정도였다. 왜 이곳이 이렇게 인기가 좋은지 궁금해하던 찰라. 장모님을 보니 답이 나왔다. 장모님은 정말 신이 나서 사진을 찍고 계셨다. 예쁜 곳이라서 그런 건지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 건지 아님 티비에 자주 나오던 곳이어서 그런 건지 차마 물어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사족으로 이야기하자면 단체 관광객들이 사진 찍은 바로 그 자리에서 그 각도로 우리도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