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오키나와- 출발
나는 밤 비행기를 좋아한다. 공항을 가는 길의 가로등 불은 언제나 묘한 설렘을 준다. 그리고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환하게 불 켜진 공항도 좋아하고 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묘하게 차분한 느낌도 좋아한다. 그래서 주로 밤 비행기를 이용하려고 노력했었는데 이번에는 낮 비행기였다. 인천발 11시 30분 비행기, 생각해보면 이런 대낮에 비행기를 탄 건 처음이 아닐까? 최소한 내 기억에는 없다.
11시 비행기여도 우리는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생강양과 나는 공항이라는 공간 자체를 좋아했고 또 어쩜 장모님이 걸음이 느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몰랐다. 우리는 6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어쩌면 너무 급한 건 아닌가 라고도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 시간이 없어서 허둥대는 것보다는 났지 싶었다. 햇볕 환한 대낮에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도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다. 무엇보다 짜릿했던 건 남들 출근 시간에 공항을 간다는 거였다. 게다가 공항 가는 길은 회사가 는 방향과 동일하여 2배 3배던 신났다.
공항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출근 시간이라 차가 막히면 어쩌냐는 걱정을 했지만 공항 가는 길은 전혀 막히지 않았다. 새벽보다 차가 적은 느낌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이제는 익숙하게 발레파킹하시는 분께 차를 넘겼다. 생강양 카드 혜택 중에 인천공항 발레파킹 무료 혜택이 있다. 인천공항 발래파킹은 발래파킹을 통해 차를 주차하면 비싼 내부 주차장이 아닌 저렴한 외부 주차장에 주차를 해주는 서비스이다. 물론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차량을 다시 가까운 주차장으로 옮겨주는 서비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천공항을 이용할 땐 늘 발레파킹을 이용했다. 비싼 공항리무진의 가격과 비교하면 두 명이면 가격이 비슷했고 3명이면 오히려 저렴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3박 4일 여행을 하며 72시간 정도 주차를 해뒀는데 3만 6천원의 주차비가 나왔다. 갑자기 그렇게 생각하니 오키나와에서 있었던 시간이 72시간이 안 되다니 슬프네
발레파킹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건물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큰 인천공항인데 걸음이 불편하신 장모님이 조금이라도 조금 걷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우리는 건물로 들어가 우선 티케팅 카운터가 모여있는 출국장으로 갔다. 역시나 거대한 크기의 인천공항이었다. 생강양과 둘이 다닐 때는 인식을 못 했었는데 이렇게 보니깐 인천공항은 너무 거대했다. 중간에 무빙워크가 있다곤 하지만 그걸 이용한다고 해도 힘든 규모였다. 장모님과 다니다 보니 건강한 우리가 평소에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 보였다. 이번 여행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다.
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한 일은 당연히 항공사 티케팅 카운터를 찾는 일이었다. 카운터에 가서 혹시 티켓팅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너무 일러서 안 된다고 했다. 그때가 아마 7시 반쯤이었던 거 같다. 11시 반 비행기니 그럴 만 하다고 생각했다. 장모님의 상황을 설명하고 장모님과 함께 가려 한다고 했더니 8시쯤 오라고 했다. 그때 왔을 때 이전 비행기 티켓팅이 끝나있으면 특별히 해주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들어가지 못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8시까지 필요한 일을 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통신사 부스를 찾았다. 생강양이 로밍이 필요해서이다. 포켓 와이파이를 신청했지만 생강양의 업무상 로밍이 필요했다. 또 생강양의 전화기를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혹시나 장모님 때문에 확인해보니 요즘은 해외에서 전화를 걸고 받는 게 무척이나 저렴해졌다고 했다. 일 분에 100원 정도 나온다고 했다. 그 정도 금액이면 장모님은 로밍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다. 혹시나 장모님은 필요하면 그냥 전화를 걸기로 했다. 나는 어떻게 했냐고? 전화기를 꺼뒀다. 와이파이만 살려서 가끔 카톡만 확인하고 계속 비행기 모드로 있었다. 로밍이 끝나고 인터넷으로 환전한 돈을 찾았다. 그것도 요즘은 ATM기에서 찾을 수 있어 편리했다. 그리고 장모님이 혹시 몰라서 먹을 멀미약을 샀다. 이 멀미약이 문제였다. 분명 멀미약을 살 때 누가 먹을 건지 비행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우리는 장모님이 드실 것이며 가까운 일본을 간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그런데 막상 받아온 멀미약이 얼마나 독했는지……. 장모님은 하루 반나절을 약에 취해 계셨다. 혹시나 잘못되었으면 어땠을지 가슴이 철렁한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여행자 보험에 가입했다. 장모님이 계시니 뭐든지 조심스러워졌다. 공항의 부스에서 가입하면 비싸다고 했다. 찾아보니 휴대폰으로 간단하게 가입할 수 있었다. 아마 어르신들은 공항 부스에서 비싸게 가입해야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뛰어다니다 보니 8시가 되었다. 우리는 첫 번째로 티켓팅을 하고 출국 심사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장모님 덕분에 출국 심사도 패스트트랙으로 할 수 있었다. 지난번 어느 한번은 공항 검색대 통과하는 것만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줄의 길이가 그때보다는 짧지만 그래도 30분은 넘게 걸릴 줄이었는데 10분 만에 통과했다. 이것도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드디어 면세구역에 들어왔다. 우리는 우선 배를 채우기로 했다. 기내식이 없는 저가 항공사를 타고 가야 하니 그전에 밥을 먹어두기로 했다. 생강양과 나는 PP카드가 있어 라운지가 무료였다. 장모님은 KT 포인트를 이용하면 저렴하게 할인이 되었다. 우리는 라운지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인천공항에는 라운지가 두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 우리는 스카이라운지를 선호한다. 급하게 스카이라운지로 갔는데 입구에 제법 길게 줄이 서 있었다. 우리는 또 10분가량을 기다려 입장할 수 있었다. 라운지는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름에 비해 먹을 건 참 초라하기 그지없다. 술을 제외하면 시중의 몇천원짜리 부패보다 못한 거 같은데 이름 때문인지 여유로운 공간 때문인지 매번 가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어쩌면 라운지라는 이름 때문인지 모르겠다. 첫 해외여행을 갈 때 돈을 아끼느라 차마 쳐다보지도 못한 한이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아침이라 간단하게 먹고 와인을 한잔하고 의자에 기대어 쪽잠을 잤다. 전날 퇴근하고 짐을 싸느라 밤늦게까지 자질 못 한 상황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전하느라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다. 한 5분~10분 정도 잔거 같은 데 아주 개운했다.
밖으로 나와 면세점 쇼핑을 했다. 멀리 가기는 힘들어 라운지에서 나와 트레인 타러 가는 길에 주변 면세점들을 구경했다. 생강양은 화장품 하나를 샀고 장모님은 선글라스 하나를 샀다. 나는 기대하던 면세 양주를 3병 샀다. 장모님까지 3명이니 3병을 살 수 있었다. 싱글몰트 글랜모리지 한병, 레미마틴 코냑 중 VSOP와 OX 사이라는 클럽 버전 한병(클럽 버전은 면세점 전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간단하게 먹을 호세 테킬라 좋은 거 한병을 샀다. 그동안 이날을 위해 점심값을 아껴둔 걸 한방에 써버렸다. 그래도 이것저것 행사에 걸리고 쿠폰과 포인트도 써서 50% 정도 할인된 금액에 살 수 있었다. 양주 3명의 묵직한 무게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쇼핑에 빠져서 있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정신 차리고 보니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한 시간 조금 넘게 남아있었다. 우리는 비행기 게이트로 가기로 했다. 일단 트레인을 타고 탑승동으로 갔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장모님의 걸음이 무척 느리게 느껴졌다. 우리가 타는 게이트는 127번 게이트였고 탑승동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었다. 멀리 게이트 넘버는 보이는데 다가가는 건 더뎠다. 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조바심이 났다. 우리 뒤에서 급하게 뛰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욱 그랬다.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쳐 갈 때마다 긴장이 되었다. 때마침 생강양은 인터넷으로 산 물건을 수령하고 가고 장모님과 나 둘만 걸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 했지만 식은땀이 흘렀다. 아마 티가 다 났으리라 생각한다. 장모님도 여유로운 척 하셨지만 긴장하신 모습이었다. 아마 나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장모님과 나의 묘한 긴장은 생강양이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생강양이 합류하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때마침 우리는 게이트에 도착했다. 역시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나는 다시한번 장모님의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 이번 여행 내내 장모님의 시간에 맞추어 움직여야 하리라 생각했다. 미카엘 엔데의 ‘모모’에 나오는 거북이와 함께 걷는 장면을 생각했다. 장모님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있을까? 비행기가 이륙하여 아이같은 표정을 짖고 계시는 장모님을 보며 한참을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