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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눈과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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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0일

 

이날은 생강양이 아팠다. 몇일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더니 대폭발을 했다. 다행이 전날 기미가 보여서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집안에 콕 들어박혀 있기로 했다. 우리는 토요일밤에 늦게까지 티비를 보다가 마루에서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은 늘 그렇듯이 강아지의 입맛춤으로 시작했다. 우리집 강아지는 주말을 어떻게 아는지 주말아침이면 늘 아침일찍 깨웠다. 아침에 산책을 가자는 것이다. 덕분에 주말인대도 늦잠을 못잔다. 그렇게 강아지에 못이겨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는 늘 산책을 나간다. 강아지를 앞세워 아파트 단지를 한바퀴돌고 단지옆 스타벅스에서 커피한잔을 사오는 코스다. 이번에도 같은 코스로 산책을 예상하고 산책전에 따뜻한 이불안에서 훈훈함을 즐기고 있는데 장모님께 전화가 왔다. 간밤에 눈이 아주 아주 많이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벌떡 일어나 창밖을 확인했다. 뽁뽁이가 붙어 있어서 잘보이지는 않지만 간밤에 내린눈으로 아파트 단지는 새하얗게 덮여 있었다. 우리는 바로 나갈 채비를 했다.

 

생강양과 난 눈을 좋아한다.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온 나는 아직 눈이 신기하고 신이난다. 20살이 넘도록 봤던 눈이라곤 땅에 떨어지면 바로 사라지고 마는 진눈깨비가 전부였던 탓이다. 눈을 뽀드득 밟는건 아직 무척 새롭고 신나는 일이다. 생강양은 생강양대로 눈을 좋아한다. 아이같은 마음으로 신이난다. 아무도 밟지않은 눈을 처음으로 밟는걸 좋아한다. 눈사람을 만드는걸 좋아한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간밤의 내린눈은 정말 온세상을 새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우리는 언른 밖으로 나갔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밟지 않은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강아지를 내려 놓았다. 강아지는 처음에는 차가운 눈이 어색한듯 내 발주위를 맴돌았지만 이내 곧 좋은지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아이도 눈이 좋은듯 했다. 그래 우리를 닮은거 같다.

 

생각해보면 강아지는 재대로 눈을 밟은 적이 없다. 이전에 살던곳은 사방이 도로인 빌라라서 눈을 밟을만한 곳이 없었다. 통행이 많은 도로에는 눈이 쌓여 있지 않았고 그나마도 회색빛 더러운 눈이었다. 그리고 거기서는 욕실에서 강아지 목욕을 시키는것도 힘들어 눈이오면 그냥 산책을 포기했었다. 이사를 오고 나서야 욕실도 넓어지고 강아지 씻기기도 좋아서 산책시킬 엄두가 났다. 강아지 견생 2년반만에 처음으로 밟는 온전한 눈이었다.

 

강아지는 처음에는 주춤거리더니 곧 신이나서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심을 하고 걷기 시작했다. 눈이 쌓인 단지를 강아지와 나는 무턱 즐겁게 걸었다. 하얀 눈 위를 하얀 강아지가 빨간 옷을 입고 뛰는 모습을 장관 이었다. 우리는 평소의 코스가 아닌 같은 단지 옆 동에 사시는 장모님의 집으로 향했다. 평소 다리가 좋지 못하신 장모님이 마음에 걸려서 였다. 가는길에 함박눈이 내렸다. 아마 장모님도 이 길을 보고 싶을꺼라 생각했다. 그랬다. 장모님 집에 도착한 우리는 강아지를 집에두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생강양에게 부축 받아서 눈을 밟는 장모님의 얼굴에 아이의 얼굴이 나왔다. 우리는 아침을 따뜻한 갈비탕과 콩나물 국밥으로 해치우고 다시 장모님을 모셔다 드리고 강아지를 대리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는 길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생강양도 눈을 크게 뭉쳐두고 왔다.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는데 손이시려서 도저히 만들수다 없었다. 누군가 그 위에 눈사람을 만들어주기를 바라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따뜻한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이날은 더 이상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 다짐했다. 눈은 좋은데 너무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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