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호텔 쪽으로 가니 익숙한 고속도로가 나왔다. 지난번에도 같은 길을 통해 호텔을 찾아간 기억이 났다. 그 익숙함이 무척 낯설었다. 그때 보고 감탄했던 언덕도, 건물도, 도로도 모두 그 자리 그대로였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데 그 익숙함이 아주 낯설었다. 묘한 감각에 기분이 좋았다. 뒤를 보니 장모님은 주무시는 것 같았다. 아마 차를 타고 긴장이 풀려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50분 정도를 계속 주무셨다. 생강양과 나는 아침부터 셔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한참을 달리다 톨게이트를 통해 고속도로를 나왔다. 톨게이트에서 근무하며 돈을 받는 사람은 누가 봐도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였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답게 이렇게 일하는 노인들이 무척 많았다. 톨게이트뿐만 아니라 공항에서 길 안내하는 작은 일들은 거의 노인들 차지였다. 우리야 익숙하지만, 장모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야 일본은 여기저기 노인들이 참 많이 일하네”
장모님은 노인들이 일을 많이 하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나 보다. 이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셨다. 장모님과 장모님 주변에 일하고 싶은데 일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가? 아니면 그냥 나이가 많다는 공통점 때문에 보이는 건가? 난 장모님이 인상적이라 말하는 게 더욱 인상적이었다.
마침내 익숙한 도로가 아닌 아는 도로가 나왔다. 우리가 그리워하던 돈가스집도 그대로이고 로손 편의점도 그대로이고 전통 공연을 하는 이자까야도 그대로였다. 마지막으로 좌회전을 하여 골목으로 들어가자 바로 문비치 호텔이 나왔다. 그때 심정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다. 오키나와가 왜 그렇게 그리웠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지난번에 어린 조카와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제대로 즐기지 못해서 일수도 있고 당시에 첫 가족여행이 너무 좋아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강력하게 남아 있었고 1년을 그리워하고 그 기억의 힘으로 버텨오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다시 돌아왔다.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익숙하게 정문의 경비원에게 문비치 호텔에 왔다고 했다. 경비원은 익숙하게 주차 허용 종이를 줬다. 모든 게 익숙했다.
앞서 설명했듯이 우리는 문비치 호텔이 아닌 문비치 팔레스 호텔에 투숙했다. 문비치 호텔은 중앙 로비를 중심으로 좌우로 긴 모습인데 중앙을 중심으로 나뉘는 건지 층이 다른 건지 모르겠지만 문비치 호텔과 문비치 팔레스 호텔은 구분해서 운영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로비의 데스크가 아닌 3층의 작은 사무실 같은 데스크로 안내받았고 지난번 방과 다른 층의 반대편 방을 배정받았다. 방은 지난번보다 훨씬 컸으며 주방이라고 할만한 싱크대와 식기들, 그리고 전자레인지와 전기 버너 그리고 전기 포트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가 보이는 방이었다.
생강양이 장모님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 호텔 방을 찾아가는 즈음이었다고 한다. 직원이 앞장서 호텔 방을 찾아가고 생강양은 장모님을 부축해서 걸어가는데 장모님이 발을 잘 못 가누 시고 취한 듯 비틀거리고 힘을 못 쓰셨다고 했다. 당연히 걸음은 더 느려지고 그만큼 무척 더 힘들어하셨다고 한다. 나는 직원과 함께 가방을 들고 가면서 장모님의 걸음이 생각보다 더 느리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땐 약간 긴장하고 흥분 상태여서 주변을 잘 보지 못했다. 한참을 기다려 장모님이 방으로 왔다. 장모님은 방을 한번 둘러보시고는 이내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누우셨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좀 주무셔야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때까지도 어머니의 상태를 정확히 몰랐다. 단지 공항에서 너무 많이 걸으셨고 또 비행기도 타셔서 몸이 너무 힘드신 건가 하는 생각만 했다. 조금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지나가고 생각해보니 피곤하시기도 하셨지만, 멀미약에 취한 거 같다. 장모님도 당시에는 잠이 너무 쏟아지는 게 피곤한 것보다 약에 취한 거 같다고 하신다. 멀미약이 멀미를 가라앉게 해주는 기능도 있지만 잠을 유도하여 비행기에서 멀미를 하지 않게 해주는 기능도 있는 게 아닌가 추측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약을 판 약사에게 화가 났다. 우리는 분명 장모님이 드실 거라고 설명을 했고 본인이 어디로 가냐고 물어 가까운 일본을 간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독한 약을 준다고? 이러다 몸이 안 좋으신 장모님이 잘못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건 정말 지금 생각해도 화가 많이 난다.
처음 생강양과 나의 계획은 일찍 숙소에 와서 체크인하고 가까운 마트를 가서 장을 본 뒤에 돈가스집에서 밥을 먹고 간단하게 한잔하고 숙소로 들어가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장모님이 약에 취해서 계획이 틀어졌다. 일단 생강양과 나는 장모님이 주무시는 동안 편의점을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장모님이 같이 가면 무척 좋아하셨겠지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때만 해도 장모님이 한 시간 정도 주무시면 같이 밥 먹으러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모님이 주무시는 걸 보고 우리는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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